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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도쿄여행기

[도쿄 여행기] 6. 여행에서 돌아온지 일주일 후


1.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나리타에서 인천으로, 그리고 인천에서 내 집으로 돌아온 뒤, 6시간정도 자고 일어나서 출근한 직장인데도, 약간의 삐걱거림을 겪었을 뿐, 다시 멀쩡하게 일을 하고, 퇴근하고 다음날 출근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일상 속으로 자연히 들어갔다. 사람은 정말로 적응의 동물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예전에는 여행기라는 장르를 잘 찾지 않았었다. '남이 여행한 이야기를 무슨 재미로 읽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온 뒤 읽는 여행기는 마치 글쓴이의 여행의 순간을 담아 놓은 작은 독립영화 같았다. 몇 장의 사진이 곁들여진 문단들이 책에, 그리고 스크린에 새겨져있을 뿐인데, 그것을 읽는 순간 내 안에서 글쓴이가 본 것들, 느낀 것들이, 마치 차가 찻잎에서부터 따뜻한 물으로 우러나듯, 진하게 살아나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타인에게 이런 영감을 준 여행지를 나도 여행하고 싶어져서, 다음 여행 계획을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여행을 다녀오기 전보다는 여행기라는 장르를 많이 읽게 될 것 같다.



3. 여행을 다녀오니 한없이 밀려오는 허전함. 저번 주만 해도 낮의 활기 넘치는 거리, 밤의 조명이 수놓아진 거리를, 넉넉한 지갑을 들고 쏘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물건을 사고, 침이 고이는 요리는 먹어보고, 오늘 들고 나온 돈은 이만큼이니까, 이만큼을 다 쓸때까진 들어가지 말아야지, 그런 화려했던 여행의 나날들과 비교되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12시까지 일어나지 못한 채 일하고, 한시간 허겁지겁 밥을 먹고, 쉬는 시간을 1분 1초까지 엄수해서 사무실로 다시 돌아간 뒤, 퇴근 전까지 다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렇게 월급날을 기다리며 참고 참고 참아서, 월급을 수령한 뒤 다시 자신을 다잡는 그런 삶, 그렇게 크게 대비되는 두 삶을 오갔기 때문에 허전함은 느낄 수 밖에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빛나는 여행의 순간들이, 하루하루 반복되는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설명하는 것보다 이 상황을 잘 드러내는 문장이 생각나서 옮겨본다.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똑같은 나날들, 진열대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는 저 크리스털 그릇들, 그리고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크리스탈 그릇 가게 주인의 이야기이다. 물론 저 분은 저러한 이유로 평생 메카 성지순례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메카는 하나이고 여행지는 무수히 많으니까, 계속 여행을 다니더라도 마음 속에는 여행이 남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4. 일본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과 대화하고 하는 것은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친구가 도맡았다. 편했다. 친구는 아직은 완전히 편하게 대화하기 힘들다고 했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원어민 화자처럼 보였다. 그래서 친구와 같이 다니는 5일간은 마치 일본 사람 한명을 끼고 여행을 다니는 느낌이었다. 다행이도 친구는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 간 일본인데 대화를 하는 데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데서 오는 신기함, 뿌듯함, 자신감 같은 것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 사람들도 한국어나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나보다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친구에게 더 많이 웃어주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살갑게 대해주고, 그로 인해서 본인이 편리함을 느끼고, 그런 이유에서 여행할 나라의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훌륭한 여행 준비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보여지는 것 외에, 그 여행할 나라의 말을 공부해야 할 이유가 또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말을 한다는 것, 대화를 한다는 것, 그것은 두 사람의 생각이 이어지는 과정이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말을 하게 된다면, 내용에도 왜곡이 생길 수 있고, 또 무언가 온전히 이어지는 느낌을 받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하게 되고, 말을 알아들으면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필터 때문에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가 능숙한 하나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두 사람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나라를 단순히 구경하고, 먹을 것을 먹는, 관광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여행의 순간순간에 온전히 들어가고, 그 속에서 살아 숨쉬려면, 그 나라의 말을 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일본어로 농담 따먹기까지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순간마다 친구가 현지인들과 오롯이 이어져있는 것처럼 보여서, 위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5. 다음 여행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2016년 초에 다녀온 도쿄 여행기입니다.


0. 여행이 찾아왔다 [출발]

1. 오길 정말 잘 했어 [산겐자야, 시부야]

2.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케부쿠로, 키치조지]

3. 여느 관광객들처럼? [요츠야, 아사쿠사, 오다이바]

4. 하비 샵의 성지로 [아키하바라]

5. 안녕 도쿄 [도쿄역, 인천]

6. 여행에서 돌아온지 일주일 후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