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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도쿄여행기

[도쿄 여행기] 4. 하비 샵의 성지로

[아키하바라]



 어제 이케부쿠로에서 빼뜨린 물건이 있었는데, 마침 오늘의 목적지인 아키하바라 가는 길목에 이케부쿠로역이 있었기 때문에 오전에 이케부쿠로에 들렀다. 볼 일을 대강 보고 나니 점심때가 되어 밥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보이는 하나마루 우동 집으로 들어갔다. 알싸한 생강이 들어간 우동과 가라아게, 새우튀김을 시켰다.

 처음에는 우동에 생강을 얹어 먹는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먹어 보니 환상의 조합이어서 안심했다. 메뉴마다 사이즈가 세분화되어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사이즈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튀김까지 더하면 양이 많아질까봐 일부러 작은 사이즈를 시켰는데, 마치 김밥천국에서 시킨 우동만한, 그러니까 1인분으로는 살짝 많은 사이즈가 나왔다. 이젠 일본은 어쩌면 대식국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국물은 어제 먹었던 라멘 국물처럼 걸쭉했다. 달걀물에 전분을 잔뜩 푼 것 같은 질감이었다. 곁들여 먹으려고 시킨 가라아게와 새우튀김도 맛있었다. 이 쯤 되니 일본에서는 음식 고르는 것을 가지고는 실패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식으로는 맥도날드에 들러 애플파이와 초코파이를 사 먹었다. 100엔 정도 하는 저렴한 가격에는 과분한 아주 바삭바삭한 질감, 그리고 깊은 사과맛과 초코맛을 가지고 있었다. 돈을 두배로 받아도 사 먹을 만큼 훌륭한 간식이었다. 한국 맥도날드의 애플파이는 먹어본 적이 없는데, 매장을 갈 때마다 매진이었던 것을 보면 이것과 비슷한 맛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드디어 오타쿠들의 성지, 아키하바라에 도착했다. 친구가 감탄을 하느라 멈춰선 사이 사진을 찍었다.



 아키하바라의 명성은 인터넷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어서 일주일 일정을 아키하바라에 할애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정도의 말까지 들었다. 나는 하비 샵에서 사고 싶은것이 있거나 구경할 것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친구를 따라서, 이왕 도쿄에 왔으니 경험도 해볼 겸 아키하바라 탐험을 시작했다. 친구는 아키하바라 블록에 들어설 때 부터 흥분 상태였다. 친구의 지갑은 텅텅 빌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고층빌딩들 중 처음 들어간 곳은 라디오회관. ‘이렇게 많은 건물들을 다 둘러보는거라면 반나절 정도는 충분히 보낼 수 있겠구나, 이 건물도 한시간정도 걸리겠네.’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그 건물을 샅샅이 둘러보는데만 두 시간 반 정도 할애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가게 하나하나들 중 부실한 내용물을 가진 곳은 한 곳도 없었다. 10층까지 올라가는 내내, 입점한 가게 구석구석에는 상품들이 꼼꼼히 채워져 있었다. 게다가 입점해있는 점포의 컨셉들이 미묘하게 달랐다. 개인 업자의 피규어를 들여놓는 매장, 중고품만 취급하는 매장 등, 각각 매장의 가격들을 비교하는 재미 또한 있어서, 결국 비슷한 물건들을 취급하는 매장들이라도 하나하나 돌아다닐 만한 가치가 있었다. 취미 물품을 쇼핑하기에는 지상 최고의 장소가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 라디오회관 10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평생 본 피규어보다 더 많은 피규어를 보았다.



쇼핑을 하지 않았던 내가 아키하바라에서 찾았던 재미는 아는 캐릭터 찾기 정도? 정말 높은 퀄리티의 피규어도 많았고, ‘이런게 피규어가 있나?’ 싶은 캐릭터의 피규어도 종종 발견했다. 핍보이와 스카이림 피규어를 발견했을 때 특히 그랬다.

 돈을 쓸 예정이 없었던 나도 아는 캐릭터를 발견했을 때 열쇠고리며 클리어 파일 같은 것들을 집어들다 보니 1500엔정도를 써 버리고 말았다. 딱히 별 생각 없이 온 내가 이 정도인데, 정말로 이런 류의 취미를 가진 사람이면, 지갑에 얼마가 들어있든 다 써 버리고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지갑이 빠르게 비워져가는 것이 내 추측에 훌륭한 표본이 되어 주었다.



 라디오회관 10층의 병 콜라 자판기에서 뽑아 마신 120엔짜리 코카콜라. 자판기에서 병 콜라가 나온다니 굉장히 신기했다. 붕어빵 모양의 음식은 성지순례를 하러 가는 친구를 떠나보내고 혼자 거리를 다니다가 시켜 본 것. 메뉴판의 일본어 밑에 쓰여진 영어 발음을 흉내내며 하나 시켜 보았다. 맛은 붕어빵이 더 나았다.



 일본에 살다 온 친구가 꼭 먹어보라고 했던 것이 그냥 보통 가격의 스시였다. 고가의 초밥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최고의 장인들이 만들기 때문에 똑같이 맛있지만, 중저가의 초밥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큰 차이를 보일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게다가 그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일본에 왔는데 초밥을 안 먹고 가는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전형적인 회전초밥집처럼 생긴 가게에 들어갔다.

 내가 가본 초밥 가게는 단품으로 나오는 곳이거나 대학가의 무한리필 초밥집 뿐이었다. 인생 최초의 회전초밥을 일본에서 경험하게 된 셈이다. 회전초밥집의 특성상 마음에 드는 초밥이 지나가면 접시를 확인하고 자리 앞에 있는 접시당 가격표를 괜히 흘끗거리게 되긴 했지만, 나중에는 주저하지 않고 덥썩 집었다. 정말 맛있었기 때문이다.

 연어는 언제나 옳았다. 연어를 너무 좋아해서 노르웨이 곰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까지 할 정도로 연어를 좋아하는데, 이곳의 연어 초밥은 지금까지 먹어본 연어 초밥중 단연 최고였다. 고등어 초밥은 살짝 실망. 밥에 구운 고등어를 얹은 것 같은 맛이었다. 회전초밥집에서 먹었던 접시 중 가장 고가였던 참치 중뱃살은 입에 넣자마자 녹아내려서 깜짝 놀랐다. 동네 회전초밥집인데 이 정도 퀄리티라니 하는 생각을 하며, 보통 가격의 스시를 꼭 먹어보라고 한 친구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식후에 많은 하비 샵들을 둘러보았는데, 그 중 하나가 돈키호테였다. 다른 하비 샵들과는 다르게 돈키호테는 마치 10층짜리 다이소 같은 느낌이었다. 식품, 잡화, 의류, 전자제품 등 정말 많은 것들을 취급하고 있었다. 정말로 없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7층과 8층은 게임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포켓몬 철권이 있길래 해 보았는데 정말 재미가 없었다... 북적한 게임센터 사이에서 유독 포켓몬 철권 앞에는 사람이 앉아있지 않았었는데, 한 판을 해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맨 윗층은 AKB 48이 라이브 공연을 하는 공연장이 있었다. 돈과 시간만 충분하다면 자신이 원하는 아이돌을 매일 볼 수 있다니, 약간 부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돈을 엄청나게 긁어 모으겠군, 역시 도쿄다,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하루의 마감은 타코야키에 호로요이로 마무리했다. 오늘은 꼭 그래야만 했다. 내일 저녁은 타코야키를 먹을 수 없으니까. 이번 일본 여행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2016년 초에 다녀온 도쿄 여행기입니다.


0. 여행이 찾아왔다 [출발]

1. 오길 정말 잘 했어 [산겐자야, 시부야]

2.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케부쿠로, 키치조지]

3. 여느 관광객들처럼? [요츠야, 아사쿠사, 오다이바]

4. 하비 샵의 성지로 [아키하바라]

5. 안녕 도쿄 [도쿄역, 인천]

6. 여행에서 돌아온지 일주일 후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