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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도쿄여행기

[도쿄 여행기] 2.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케부쿠로, 키치조지]




 이튿날 일어나서 찍은 동네의 풍경. 역시 내 생각대로 산겐자야는 조용한 일본 동네였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어제보다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다.



 길에 있는 자판기, 그리고 로손 편의점. 상품들의 가격은 우리나라의 것들과 다르지 않은데, 맛이나 질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아침에 먹으려고 사온 컵라면의 퀄리티는 정말로 놀라웠다. 국물의 농도나, 라면 안의 고기와 야채의 질감은 우리나라의 컵라면에서는 맛본 적 없는 맛이었다. 모닝커피 대용으로 캔 밀크티 하나 역시 사 왔다. 필명이 데자와임에도, 일본에서 먹은 캔 밀크티가 우리나라에도 같은 가격으로 있다면 데자와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데자와가 들으면 서운해할 생각을 했다. 스윗츠 - 일본 사람들이 디저트를 부르는 단어라던데... - 도 종류가 다양한데, 하나같이 저렴하고 또 먹을 만했다. 맛있는 도지마 롤과 에그 타르트를 곁들여서 차를 마시니 아침부터 기분이 꽤 좋아졌다.



지하철은 우리나라보다 좁았고, 상대적으로 시설도 낙후된 느낌을 받았다. 1호선을 타는 느낌? 게다가 노선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되어 있는 데다가, 몇 개 역을 건너뛰는 급행열차도 수시로 도착하는데, 별도로 표시되는 것 없이 역무원의 안내만으로 타야 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잘 하는 친구가 같이 다니지 않았더라면 수없이 열차에서 내려야 했을 것이다. 지하철만큼은 우리나라의 완승이었다. 다만 의자가 푹신했던 점과 뜨끈뜨끈하게 데워져 있는 점은 꽤 마음에 들었다. 그 때문에 지하철만 타면 꾸벅꾸벅 졸게 되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피로를 풀어주는 느낌이었달까.



 오후에 키치조지 역에 가기 전의 환승역인 이케부쿠로에 내렸다. "여성들의 아키하바라."라는 별명이 있다던데, 아키하바라만큼은 아니었지만 각종 굿즈가 가득한 빌딩이 두세 개 있었고, 만화책을 파는 큼지막한 상점도 두어 개, 백화점도 두 개 서 있었다. 도쿄는 오늘도 돈 쓰기 좋은 동네라는 명성을 스스로 입증하는 듯했다.

 일단 게임센터에 들러 인형 뽑기에 돈을 탕진했다. 전후좌우 이동이 되는 우리나라의 인형 뽑기와는 다르게, 일본의 인형 뽑기는 우로 가는 버튼 누를 기회 한번, 앞으로 가는 버튼 누를 기회 한 번이 주어졌다. 게다가 1회에 백 엔! 인형 뽑기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교훈을 얻었다. 가챠 기계들은 200엔부터 400엔까지 다양한 가격을 하고 들어서 있었다. 한국의 뽑기 기계와 비교하면 내야 하는 가격은 훨씬 고가이고, 어쨌든 원하는 것을 뽑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저질 상품은 들어있지 않아서 좋았다. 뭐가 나오든 꽤 괜찮은 퀄리티를 하고 있었다. 뭔가 될 것 같은 인형 뽑기만 골라서 돌아다니고, 또 한국의 지인들에게 줄 기념품으로 피카츄나 시바견 몇 개를 뽑고 나니 몇천 엔이 사라져 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쿄는 눈 똑바로 뜨고 지갑을 탈탈 털릴 수 있는 동네였다.



음... 롯데리아는 본토의 것도 맛이 없었다.



 파르코 백화점 7층에 있는 "너의 이름은" 카페 목전까지만 갔다. 그래도 나름 세 번이나 극장에 가서 본 영화인데, 성지순례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후 한 시였는데도 소문대로 줄이 길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오전 11시쯤 도착해도 오후 4시에 겨우 입장할까 말까 하는 수준이라니, 영화의 인기가 실감이 갔다.

 카페 앞에는 역시나 가챠 기계가 있어서 내 돈을 빨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2천 엔을 썼다. 2번 연속 고슴도치, 그리고 너는 누구야? 공책 페이지 따위가 나와서 좌절했다. 이 가챠는 인기가 꽤 많은 듯했다. "1인 1일 5회 한정"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옆의 굿즈샵도 둘러보았는데, 모든 미츠하가 그려진 굿즈는 다 팔려나간 듯했다. 선반에 가득한 타키 열쇠고리를 보며 사람들 참...이라는 생각을 했다.



 미타카의 지브리 미술관으로 향하기 위해 이케부쿠로 역에서 키치조지 역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키치조지 역시 꽤나 번화한 역이었다. 지브리 미술관이 있는 동네답게 가는 길목에 토토로 같은 것이 가득 진열된 가게가 있었다. 이노카시라 공원을 지나, 수많은 이정표들을 따라서 30분 정도 걸었을까, 이 길이 맞나, 그렇게 유명한 건물이 이 거리에서 보여야 하는데 길을 잘못 든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지브리 미술관의 정문에 도착했다. 입구의 매표소 건물에 들어가 있는 토토로가 여기서부터는 지브리 미술관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지브리 미술관은, 지브리의 만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공간이었다. 거신병이 서있는 옥상을 포함해서 4층짜리 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지브리의 콘텐츠들로 가득 채워진 각각의 공간들은 정해진 루트 없이 배치가 되어 있어 관람객의 발길이 닿는 순으로 관람하면 된다, 하는 콘셉트를 가진 공간이었다. 미술관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사진은 외부의 것만 남겼다.

 지브리의 상징물들은 미술관 내부를 꼼꼼하게도 채우고 있었다. 너무나 채울 것이 많아서 미술관 전체에 촘촘하게 채워 넣어야 할 정도인 것 같았다. 역시 일본 최고의 만화 스튜디오의 미술관다웠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1층의 영화관에서 상영해줬던 8분 남짓 되는 영화. 인간 소년과 고양이 소년이 풀밭에서 뒹굴고 하는, 대사는 한 줄밖에 안 나오는 그런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내게는 다시는 없을 동심의 시절을 봐서 그랬다. 두 번째는 거신병이 있었던 옥상 정원. 사람 키의 두세 배 정도 되는 거신병은 필수 포토존 같은 느낌이어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거신병 동상은 미술관을 나와 집에 가는 길에도 보일 정도로 컸다. 괜히 배웅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세 번째는 카페테리아의 핫도그와 러시아식 빨간 수프. 너무 많이 걸어 다녀서 그런지 엄청 맛있게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맞았다.

 미로라는 콘셉트 때문인지 출구 역시 숨겨져 있어서, 나가는데 애를 먹었다. 마지막까지 지브리 미술관은 콘셉트에 충실했다. 천 엔이라는 입장료가 너무나도 저렴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키치조지의 밤거리는 또 다른 절경이었다. 마치 여긴 일본이야, 말하는 듯한 요소들이 들어서 있었다. 사진을 보니 그날 거닐었던 밤거리의 기억들, 대화들, 심지어 서늘한 공기까지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다리에 써진 일본어를 보고, "저걸 대체 어떻게 키치조지라고 읽는 거야?" 친구가 의아해했다. 일본어는 만만찮은 언어인 모양이다.



 다시 이케부쿠로에 들러, 역시 3대 규동 체인 중 하나인 마츠야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소금구이 덮밥에 맥주를 시켰다. 역시나 만족스러운 퀄리티의 식사가 나왔다. 장국은 따로 안 써져있었던 것 같은데 기본 옵션으로 딸려 나왔다. 어제 먹었던 체인점인 스키야와 굳이 비교하자면 스키야 쪽이 약간 더 맛있었던 것 같다. 규동에 비해 다소 담백한 메뉴를 시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식사 후 친구는 쇼핑을 하러 서점에 들어가고, 나는 가게 앞에서 친구가 시켜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산겐자야 역에서 내려 번화가를 지나, 숙소 쪽으로 가기 위해 조용한 골목길로 접어드는 구간이 있는데, 거기에 타코야키 집이 있었다. 이 가게는 나로 하여금 산겐자야를 한결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

 타코야키를 주문하면서, 친구는 "테이크아웃해주세요."하는 표현을 배웠다. 한국의 타코야키 트럭에서는 치즈맛이며 매운맛 따위를 파는데, 여기는 기본 소스 외에 폰즈 소스를 뿌려먹는 타코야키가 있었다. 오늘만 날이 아니기에 폰즈는 내일로 미루고, 기본 맛을 시켰다. 한국에서 팔던 것에 비하면 한 알의 크기가 두 배 정도 되어서 아주 넉넉한 양이었다. 8천 원 정도 투자해서 근사한 야식 상이 마련되었다. 어제 사 왔던 호로요이들을 기울이며, 일본에서의 이틀째 밤을 행복하게 지나 보냈다.


2016년 초에 다녀온 도쿄 여행기입니다.


0. 여행이 찾아왔다 [출발]

1. 오길 정말 잘 했어 [산겐자야, 시부야]

2.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케부쿠로, 키치조지]

3. 여느 관광객들처럼? [요츠야, 아사쿠사, 오다이바]

4. 하비 샵의 성지로 [아키하바라]

5. 안녕 도쿄 [도쿄역, 인천]

6. 여행에서 돌아온지 일주일 후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