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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도쿄여행기

[도쿄 여행기] 3. 여느 관광객들처럼?

[요츠야, 아사쿠사, 오다이바]



  집 밖을 나서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타입인데, 숙소의 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순간은 항상 상쾌했다.



 요츠야에 다녀왔다고 하면 친구들은 "거기는 왜?" 라거나, "전철 타면서 지나가 본 적 밖에 없어."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요츠야에 간 이유는 "너의 이름은."의 엔딩 씬에 나오는 그 유명한 계단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침 아사쿠사를 가는 길목에 있고 시간 여유도 있었기 때문에 가볍게 들러 보기로 했다. 요츠야 산초메 역에서 "너의 이름은" 성지가 있는 스가 신사에 도착하는 데는 10분 정도 걸렸다. 신사 정문에 도착한 후 영화의 성지인 그 계단이 어디에 있나 찾으려고 10초 정도 두리번거렸는데, 이윽고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사 한편에서 20명 정도 되는 인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나온 지 한참 되었음에도 성지순례를 온 관광객이 많았다. 세 명 중 두 명은 중국인, 한 명은 한국인인 것 같았다. 사진을 찍으려고 선 줄이 너무 길어서 지나치듯 사진을 몇 장 찍고 아사쿠사로 가기 위해 요츠야 역을 향해 갔다.

 가는 길에 자판기에서 "너의 이름은." 포스터를 발견했다. 일본 사람들은 콘텐츠의 매력을 어떻게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돈을 버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판기에서 100엔짜리 음료수 하나를 뽑아 마셨다. 아침부터 도쿄는 내 돈을 능숙하게 가져갔다.



드디어 아사쿠사. 신사의 입구부터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패키지 관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깃발 같은 것을 들고 메가폰을 사용하고 있는 가이드, 그리고 그 뒤로 들어선 백팩과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 어제까지는 자유 여행답게 관광 코스보다는 우리가 가고 싶은 곳 위주로 다녔었는데, 오늘은 여행이라는 단어보다는 관광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은 장소에 왔기 때문일까, 마치 패키지 관광의 일원이 된 기분을 느꼈다.

 신사 내부로 가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많은 기념품들이 길 양 쪽으로 들어서 있었다. 전통 일본풍의 알록달록한 부채, 우산, 고양이나 무녀 장식품 같은 것들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곳에서 봤던 것 같은 설탕을 잔뜩 묻힌 과자, 팥이 들어있는 빵, 속에 견과류 같은 것이 채워진 과자 등. 간혹 한 두 가게는 뜬금없이 헬로 키티나 세일러문 같은 것을 들여놓거나 했지만, 대부분의 가게는 신사라는 테마와 어울리는 물건을 팔고 있어서, 분위기를 크게 깨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꽤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신사의 중앙에는 향이 피워져 있어서, 내부에 은은한 향이 퍼졌다. 유카타를 입은 관광객들이 향 주위에 둘러서서 연기를 맞으려 서 있었다. 향을 맞으면 길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서, 무엇을 알고 저렇게 하는 것인지, 그냥 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내부 곳곳에 점을 볼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흔히 미디어에서 봤던, 쇠로 된 통에 나무젓가락 같은 것이 잔뜩 들어있고, 그것을 흔들어 젓가락 하나를 뽑고, 젓가락에 적힌 숫자에 맞는 서랍을 열어 맨 윗장의 종이를 꺼내 운세를 찾는 방식이었다. 신기하게도 자판기처럼 동전을 넣으면 운세가 나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양심 마트처럼, 자기가 스스로 점을 보고 알아서 돈을 넣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종교 시설이기도 하고 자기 운세를 보는 곳이라서 돈을 안 내고 가는 사람은 없을 것 같긴 했다.

 신사 내부에는 동전을 던져놓고 기도를 하는 공간도 있었다. 기도를 하는 사람들 역시 엄청나게 많았다. 슬쩍 빈 곳에 서서 백 엔을 던져 넣고 소원을 빌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기도를 할 때는 5엔을 넣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보통의 기도보다 20배 간절하게 전달이 되었으려나...

 아사쿠사에서 나오는 길에 도쿄 스카이트리가 보였다. 일본에 살았던 친구에게 도쿄 스카이트리를 방문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그냥 아사쿠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멀리 보이는 스카이트리만 슬쩍 보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친구가 시킨 대로 했다. 여행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결혼 못하는 남자의 에피소드 중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러 가는 화가 있다. 이전 에피소드들에서 보여주었던 주인공의 요리 실력이 오코노미야키를 구울 때에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그런 장면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일본에 가면 꼭 오코노미야키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된 영상이기도 하다. 도쿄 스카이트리를 보고 아사쿠사 역으로 돌아가는 골목에 있는 몬자야키 집 앞에 줄을 섰다. 주문을 하기 전 번거로울 것 같아 일본에 살았던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일본은 음식을 주문할 때 물어보는 것이 많아서 새로운 가게를 들어가기 전에는 괜히 긴장하게 되어버렸다. 친구의 조언대로 소 힘줄 오코노미야키에 면을 추가하고, 야키소바를 하나 더 시켰다.

 뜨겁게 달궈진 거대한 철판, 쇠로 된 뒤집개까지. 비주얼은 영락없이 드라마에서 봤던 그것과 같았다. 설렘이 고조되었다. 이제 곧 내 앞에 맛있는 오코노미야키와 야키소바가 놓이겠지, 하는 생각에 즐거워졌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닥쳤다. 종업원이 오코노미야키 반죽과 야키소바 재료를 담은 접시를 철판 옆에 놓고 가버린 것이다. 설마 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가게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주문한 것을 직접 굽고 있었다. 당연히 구워줄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것이었는데... 겨우 이야기해서 반죽을 굽고 뒤집는 정도까지는 도움을 받았지만, 그 위에 소스라던가 토핑을 뿌리는 것, 그리고 야키소바를 굽는 것은 고스란히 우리가 해야만 했다. 뒤집개는 작은 것을 써야 하는지 큰 것을 써야 하는지, 소스는 어떻게 뿌려야 하는 건지,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쿠와노 씨가 굽던 장면을 머릿속으로 더듬으며, 이따금은 옆 테이블의 여학생들이 하트 오코노미야키를 만들며 깔깔대는 것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참고하면서, 태어나서 처음 해봤기 때문에 어설플 수 밖에 없는 오코노미야키와 야키소바를 만들었다.

 소스를 약간 적게 바른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맛은 최고였다. 탄수화물 반죽, 철판에 두른 기름, 짭짤한 소스에 감칠맛 나는 마요네즈까지. 맛이 없기가 힘든 조합이었다. 지나와서 생각해보니 꽤 좋은 추억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일본에 가게 된다면 한결 더 능숙하게 오코노미야키를 구워야지, 하는 생각도 든다.



 행복한 점심을 마치고 오다이바로 향했다. 오다이바에 가기 위해서는 유리카모메라는 예쁜 이름의 노선을 이용해야만 한다. 다른 지하철들보다 시설이 좋았고, 인공 섬을 관통하는 열차여서 그런지 주변 풍경을 부각하기 위해 창문이 시원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열차라기보다는 관람차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이바 시티 앞에는 실제 크기의 건담이 서 있었다. 여기에서도 아사쿠사처럼 관광객 무리와 섞이게 되었다. 도쿄 관광의 필수 코스 중 하나인 걸까? 적어도 건담 팬이라면 꼭 들를 만한 장소 같았다. 거대한 건담의 뒤편으로는 아니나 다를까 건담 카페가 있었다. 도쿄는 눈 뜨고 지갑을 털리는 동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음에도 가게 앞 가챠에 600엔을 뺏기고 말았다.



 도쿄 빅 사이트를 보러 가는 길에 건물을 관통하려다가 우연히 들어와 버린 자동차 전시관. 아무리 관광 코스를 따라 걷더라도, 이런 예상 못한 멋진 것을 발견하는 순간은 자유 여행만이 가진 속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동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들뜬 마음으로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빅 사이트까지 도보로 이동하며 만난 풍경들. 춥고, 바람은 매섭고, 며칠째 무리하게 걸어서 발바닥은 아팠지만, 그래도 풍경은 정말 멋졌다. 버스로 이동하는 관광객들은 스쳐 지나갈 광경 속에서 걷는다고 생각하니 자유여행을 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 지도에만 의존하며, 길을 건너서 웬 어두운 공원을 뚫고 나가니, 기가 막힌 포토존이 있었다. 친구와 서로 사진을 몇 장 찍고, 풍경을 바라보며 10분 정도 서 있었다. 하루 종일 왁자지껄한 관광객들 틈에 있었는데, 이 공간만큼은 나와 친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약간 세기말적인 느낌마저 풍겨왔달까. 그런 적막은 자유 여행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 하며, 자유 여행의 장점이 자꾸 생각났다. 비록 추위는 매서웠고 발바닥도 아팠지만, 4박 5일 도쿄 여행 중 좋았던 순간을 가려내면 열 손가락에 꼽을 만한 그런 순간이었다.



 돌아오는 유리카모메는 더욱더 예뻤다. 맨 앞자리는 저렇게 뚫려 있어서, 정말 관람차를 타는 것 같은 느낌으로 주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기관사 옆 자리는 비어있는데, 사진처럼 승객이 앉아서 가는 것이 가능했다. 친구가 어디에선가 유리카모메는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맨 앞 칸이 아니라 바로 저 기관사 옆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저 자리에 앉으면 영락없이 관람차를 타는 기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석양이 지는 오다이바를 가로지르는 유리카모메 안에서, 도쿄 여행의 3일 차가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잠시나마 자유 여행의 페이스에 서 있었는데, 선샤인 시티의 포켓몬 센터에 도착하자 다시 관광객 무리와 하나가 되었다. 정말 포켓몬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오는 곳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최고조로 밝았다.

 정말 많은 피카츄 인형과 피카츄 인형, 그리고 피카츄 인형이 있었다. 그 외에 포켓몬 인형, 포켓몬 클리어 파일, 포켓몬 자석, 포켓몬 과자, 포켓몬 컵라면 - !! - 까지 있었다. 좋아하는 포켓몬으로 된 상품이 없어서 마침 필요했던 컵받침을, 이브이가 그려진 것으로 하나 샀다. 실용적인 기념품으로 딱 적절한 것을 골랐다고 생각한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선샤인 시티 옆의 라멘집에 들어갔다. 일본에 오면 라멘을 많이 먹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던 이유는 라멘집이 관광객이 들어가기에는 약간 막막한 분위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좁은 테이블 간격, 물어보는 것은 많고, 주인장과 마주 보고 밥을 먹어야 하는 점 등,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힘든 요소들 투성이었다. 그나마 이 라멘집은 가게 앞의 기계에서 주문을 마친 뒤 쿠폰을 뽑아 들어가는 식이어서 주문이 수월했다. 쿠폰을 건네면서 "밥 추가하실 건가요?" 등의 예고 없는 질문에 살짝 당황하기는 했지만.

 라멘의 국물은 아주 진했고, 고명이 엄청나게 푸짐했으며, 면도 엄청나게 많았다. 다시금 일본인이 소식을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하며, 일본 라멘을 만끽했다. 건대 중문의 우마이도라는 라멘 맛집에서 먹어본 것이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제일 맛있는 라멘이었는데, 저 라멘을 먹은 이후로 그 순위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뼛속까지 개운해지는 국물, 큼지막하고 두꺼운 차슈와 적절히 삶아진 계란, 면에 싸 먹는 식감이 재미있는 김에, 안 어울릴 것 같았는데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시금치까지. 사진 속의 저 라멘은 내 마음속 라멘 순위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푸짐하게 먹은 라멘 때문에 포만감이 절정에 달했지만, 여행을 왔으니 먹을 것은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도 타코야키 집에 들렀다. 어제 먹기로 했던 폰즈 소스를 주문했다. 새콤한 폰즈가 끼얹어진 타코야키는 한국에서 흔히 먹는 짠맛의 소스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로손 편의점에서는 캔으로 된 산토리 하이볼을 샀다.

 보통은 버스로 이동하는 관광 코스 사이사이를 도보와 지하철만으로 이동한, 그래서 관광 코스의 좋은 점에 자유 여행의 장점까지 더했던 즐거웠던, 하지만 노곤했던 하루를, 맛있는 음식으로 채운 배에 하이볼 샤워를 한 좋은 기분으로 마무리했다.


2016년 초에 다녀온 도쿄 여행기입니다.


0. 여행이 찾아왔다 [출발]

1. 오길 정말 잘 했어 [산겐자야, 시부야]

2.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케부쿠로, 키치조지]

3. 여느 관광객들처럼? [요츠야, 아사쿠사, 오다이바]

4. 하비 샵의 성지로 [아키하바라]

5. 안녕 도쿄 [도쿄역, 인천]

6. 여행에서 돌아온지 일주일 후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