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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2018 유럽여행기

[런던] 3. 런던에서 보낸 1월 1일 한가한 하루

 전날 새해 술파티를 벌이고 점심 즈음 일어났다. 친구는 숙소에서 좀 더 잔다고 해서, 혼자 나와서 숙소가 있는 Kensal Green 역 근처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영국에 왔으니 영국 스타일로 머리 한번 잘라보지 않아야겠냐는 친구의 성화가 여행 내내 계속되고 있던 차, 여긴 어떨까 하고 길을 걷다가 미용실 가격표를 찍었다. 친구는 12파운드정도면 꽤 저렴한 편이지만, 그만큼 머리가 좀 이상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의 가격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저 가게에선 자르지 않았다. 이발사 아저씨 눈이 풀려있어서...

 

 오아시스의 원더월을 들으며 산책을 했다. 노래와 풍경이 너무 잘 어울렸다. 노래가 나온 곳으로 와서 그 노래를 들으니 어울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생각했다. 오아시스는 맨체스터 출신이긴 하지만, 어쨌든 잉글랜드라는 문화권에서 나온 밴드니까. 그 외에도 많은 영국 밴드들의 노래를 들으며 산책을 했다. 우중충한 날씨와 우중충한 도시 풍경 사이사이 포인트처럼 있는 빨간 버스, 빨간 우체통, 빨간 간판. 영국에 있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숙소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서 좀 걸으니 하이드 파크에 도착했다. Winter Wonderland라는 제목으로 축제를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날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지는 않았지만 적지도 않았다. 크지 않은 놀이기구, 그리고 음식을 파는 가판대들이 모여있었다. 작은 놀이공원 같은 분위기였다. 축제가 열리지 않고 있는 하이드 파크도 충분히 좋았다. 넓은 잔디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영국에 있구나, 사색하며 걷기 좋은 공간이었다.

 하이드 파크에서 나와, 좀 걸어서 버킹엄 궁전에 도착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건물, 그리고 근위대를 보니 신기했다. 조금 기다리면 세레모니를 할 것도 같았는데, 그냥 발걸음을 뒤로했다. 일종의 랜드마크 찍기성 방문인 셈이다. 친구와 나는 주로 가고 싶은 곳에 가며 시간을 보냈다. 랜드마크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런 랜드마크를 보는 순간보다는, 그냥 길을 걸으며 생각을 하고, 순간을 느끼고, 그런 시간들을 더 즐겼던 것 같다.

 늦게 일어난 탓인지 해가 빨리 저물기 시작했다. 더 무리해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숙소가 있는 동네로 돌아왔다. 오늘의 야식은 치킨 코티지에서 파는 치킨이었다. 영국남자 유튜브 채널에서 "영국 치킨은 한국 치킨보다 맛이 없다."면서 등장했던 교보재 중 하나였는데, 솔직히 맛있었다. 기름에 절여져서 눅눅했지만, 그래도 튀긴 닭은 튀긴 닭이라서, 맛이 없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영국에 사는 사람이 보낸 주말 하루같아서 좋았다. 전날의 피로 때문에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무리해서 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