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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2018 유럽여행기

[런던] 2. 대영 박물관 관람 후 런던에서 새로운 해 맞이하기

 

 새벽 5시쯤 잠에서 깨서 창 밖을 찍었다. 한 해의 마지막 새벽이기도 했다. 런던 여행을 계획했던 이유 중 하나는, 가장 시간이 빠른 도시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였다. 24시간 뒤에는 새해라니 기분이 묘했다. 생전 처음으로 외국에서 맞이하는 새해라서 기분이 한결 더 묘했다.

 

 씻으면서, 옷을 챙겨입으면서, 그리고 문 밖을 나서면서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한결같이 영국스러웠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오전의 지하철은 한산했다. 좌석 배치가 엄청 비효율적인 것 같았다. 만원에 가까워질수록 서서 가기 힘들 구조였다. 하지만 사람이 없이 한산할때는 아늑한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오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대영 박물관으로 향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안 오는것도 아닌 날씨였다. 미스트같은 비가 공기와 땅을 축축하게 했다. 하늘도 회색빛이 돌았다. 영락없이 스크린 속에서 보던 영국 하늘이었다. 하지만 영국스러운 동시에 다른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곳이 런던이었다. 세계적인 대도시기 때문일까. 동양 문화권의 레스토랑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식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간판까지 한국어인 것이 신기했다.

 

 드디어 대영 박물관에 도착했다. 외관부터 위엄이 느껴졌다. 인파는 적당히 있었던 것 같다. 영국남자 채널에서 올리가 "대영 박물관의 입장료가 공짜인 이유는 안에 있는 물건들이 모조리 훔쳐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정말 입장료가 공짜였고, 정말 훔쳐온 물건들로 가득했다.

 

 문화재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닌지라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박물관을 돌았다. 세계사에 큰 관심이 없었고 지식도 얕았지만,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유물의 역사, 현재 모습이 된 이유, 그리고 대영 박물관까지 오게 된 경위, 그런 내용들을 들으며 박물관을 순서대로 누볐다.

 

 한국실이 따로 있는것이 신기했다. 인상깊었던 문화재는 없는 것 같다. 박물관은 체험학습이니 뭐니 해서 한국에서도 많이 다녔기 때문에... 하지만 하나의 실을 따로 둘 정도로 우리나라의 문화가 깊이있다는 사실은 인상깊었다.

 

 점심은 16000원정도 하는 피쉬 앤 칩스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니 런던의 물가가 참 살인적인 것 같다. 말이 좋아 피쉬 앤 칩스지, 조금 느낌이 다른 생선까스와 감자튀김일 뿐이지만, 참 맛있게 먹었다. 좋아하는 영국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음식이기 때문일까. 소금과 식초를 곁들여 먹는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이란게 참 별거 없는데 맛있었다. 피쉬 앤 칩스라서 그런거겠지...

 

 그리고 또 다시 런던 전경을 구경했다. 자정까지는 고정된 일정이 없어서, 템즈 강 주변을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계속 미스트같은 비가 내려서 영국스러운 분위기가 극한에 달했다. 고풍스러운 건물, 축축한 바닥, 습한 공기, 빨간 전화박스, 우산 대신 뒤집어쓴 야상, 그런 것들 사이를 누비며 런던을 있는 그대로 느꼈다.

 

 점점 시간이 저녁에 가까워지고, 노을이 지는데, 마침 런던 아이 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장관이었다. 더 잘 볼 수 있는 각도를 찾아서 움직여 가기 시작했다.

 

 괜찮은 사진을 하나 건졌다. 사진 멀리에는 공사중인 빅 벤도 찍혔다. 좋은 사진을 찍고 나서 계속 걸어서, 정말 런던 아이에 가까이 다가갔을때는 노을이 많이 져버린 뒤였다. 그렇게 런던을 돌아다니다보니 밤이 되었고,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런던 새해 불꽃놀이 시간이 다가왔다.

 

 UTC+0에 위치한 런던이라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가 있어서인지, 정말 많은 인파가 저 자리에 있었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었는데, 그 중 관광객의 비중도 꽤 될 것 같았다. 00시 정각이 되기 한 시간 전부터 이미 주변 도로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일행들도 함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팝 음악을 함께 따라부르며 00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00시, 새 해가 되기 10초 전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고,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성대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불꽃놀이는 거의 15분 가량 계속된 것 같다. 정말 많은 소원을 빌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엄청 특별한 소원을 빌지는 않았고, "지금까지의 삶보다 앞으로의 삶이 더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소원을 빈 것 같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우글거리는 인파와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참고로 새해 런던은 24시간 지하철 운행을 해서, 늦게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갈 수 있었다. 그런데 12월 31일에는 대부분 가게 문을 빨리 닫아버려서 밤늦게까지 보낼 만한 펍이 없었다. 다행이도 일행 중 한 명의 숙소 1층에 있는 펍이 새벽까지 한다고 해서 그 곳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유럽의 댄스플로어는 범접하기 힘든 곳이었다. 한국에서도 춤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여기 댄스플로어는 밖에서 보기에는 황소같은 덩치의 남녀들이 몸통박치기를 하는 투우장처럼 보였다. 그 속에 섞이지 못하며 술을 홀짝거리는 동안 괜한 외로움을 느꼈지만, 만날 이도 없이 방에서 혼자 외로운 것보다는 군중속의 고독을 느끼며 궁상을 떠는 것이 더 나은 형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새벽 3시쯤 펍이 문을 닫고, 일행과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해가 바뀌었지만, 우리 여행은 여전히 진행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