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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영화

우리 현실을 담아낸, 말도 안 되지만 있을법한 이야기

<영화 관람 전이라면 글을 읽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기사를 본 것이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였다. 2018년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작년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서 관람하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은, 좋은 작품이지만 동시에 난해하면서 어딘가 아쉬운 구석이 있는 영화였다는 것이다. 칸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의 기준이 내 취향과는 조금 다른 것일까 생각했다. 똑같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도 "어느 가족"처럼 난해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 예상할 뿐이었다.
 전혀 시놉시스를 알지 못하고 간 영화관에서 좋은 충격을 받고 돌아오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기생충"역시 따로 시놉시스를 찾아보거나 트레일러를 보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기생충"이라는 제목, 어딘가 괴기한 포스터, 그리고 집에서 와이파이를 잡으려 고민하는 몇 초간의 클립을 통해, 재난 상황에서의 인간성에 대한 영화인가, 추측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트레일러를 봤는데, 어떤 영화인지 전혀 알 수 없게 해 놓았다. 조던 필의 "겟 아웃"의 경우는 트레일러에 너무 과하게 내용을 집어넣어 둬서 영상 댓글란이 혹평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나는데, "기생충"의 트레일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없는 동시에, 영화를 보고 싶게 한다는 점에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예상과는 달리 영화를 이해하는 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한국적인 소재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반지하, 학구열, 수능, 자녀 과보호, 대만 카스텔라, 취업난 등,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이 영화가 어떻게 황금종려상을 받았는지, 칸이 어떻게 이 영화를 이해하고 상을 줄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구도를 거시적으로 본다면, 너무 한 문화권에 지엽적인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말 간단하게 말하면 "기생충"은 열악한 환경에 사는 백수 네 가족과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 천박한 모습을 보이는 상류층 이야기인 것이다. 사람 사는 것이라는 게 다 같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를 이해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생충 가족 중 아들 "기우"의 친구가 할아버지께서 주신 수석을 선물로 건네줬을 때, 기우는 "참 상징적이네."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영화에 대한 감독의 자평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전반적으로 상징적인 장면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기생충"이라는 제목부터 그러하다.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 기생충이 나오지는 않지만 결국 기생충과 같은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부잣집에 기생하는 반지하 가족, 또 부잣집에 기생하는 전 가정부와 그 남편 등, 제목인 기생충에 대입할 수 있는 다양한 구도가 등장한다. 상징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수석도 여러 장면에서 상징적인 장치로 등장한다. 집안에 재물과 화목함을 가져다준다는 수석은, 결국 가정부 남편에게 일발역전의 찬스를 제공하고, 반지하 가족의 몰락의 방아쇠가 되고 만다. 극 중반부터 나왔던 "냄새"역시 그렇다. 김기사 아저씨와 가정부 아줌마에게서 나는 같은 냄새는, "반지하 냄새"라는 극 중 대사로 미루어보았을 때 볕이 들지 않아 빨래가 제대로 마르지 않았을 때 나는 물 냄새 같은 것이리라. 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에 사는 인간들에게 나는 냄새. 코를 틀어막게 하는 냄새. 반지하에 사는 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냄새. 반지하 가족의 지워지지 않는 꼬리표이며, 부자 가족으로 하여금 자신과 다른 계층의 인간을 업신여기게끔 하는 수단이고, 결국 기철로 하여금 박사장(이선균)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기도 하다. 왜 기철이 박사장을 죽였는지는 지금도 명쾌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딸은 칼에 찔려 죽어가고, 아들은 머리에서 너무 많은 피를 쏟았고, 살인범이 아직 죽지 않은 상태. 살인범에게 모든 누명을 씌우고 상황을 수습했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수도 있고, 반지하 가족은 박사장 가족에게 계속 기생하며 잘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가능성을 뒤로한 채, 박사장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게 한 동기, 그 동기에 불을 지핀 것이 "냄새"가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살인 후 기철은 세상 속으로 도망치는 대신 반지하보다 더욱 깊숙한 지하 벙커로 숨어버린다. 살인까지 저지른 존재가 갈 곳은 결국 깊은 땅 속뿐인 것이다. 집 자체에 기생하며 살던 기철은, 그다음에 집으로 이사 온 독일인 가족에게 다시 기생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극의 초반, 반지하 가족이 박사장의 가족에게 기생해갈 때, 사기꾼 가족이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며 짜증이 났다. 박사장 일가가 좀 덜떨어지고 천박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기는 명백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기의 과정 속에서 선량하게 일하던 기사와 가정부까지 쫓겨나고, 심지어 가정부는 목숨까지 위협받는다. 그렇게 짜증을 유발하던 반지하 가족을 보다가, 어느 순간 그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순간이 있었다.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간 날, 테이블에 술을 가득 놓고 따라 마시며 통유리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던 장면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평생을 사기를 쳐도 살기 힘든 집의 마당 전경을 바라보며 풍경 좋다고 넋두리하는 장면에서, 빈자에게 더 이입하게 된 것 같다. 대저택에 살지도 않고 열악한 거주지에 살지도 않는, 중간층인 입장이지만, 반지하 가족에게 더 공감하게 되었던 것 같다. 지워지지 않는 냄새를 달고 다니고,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일을 하더라도, 돌아온 집은 폭우로 물이 넘쳐 오물이 가득하고 세간살이는 물에 둥둥 떠다니고. 능수능란하게 사기를 치는 모습들을 보면 기회가 있었다면 한가닥 했을지도 모르는 능력자들이지만, 절대 역전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오는 무력감과 분노, 그런 것에 공감하게 된 것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는 설국열차보다는 덜 상징적이고 덜 작위적이지만, 더 노골적으로 계급을 그려냈다. 바퀴벌레 블록을 주워 먹고 새우잠을 자는 꼬리칸과 귀족처럼 사는 열차 앞 쪽의 대비보다, 나사 빠진 듯한 모습이지만 요새 같은 집에 상류층, 재주들은 있는 것 같은데 결코 거지 같은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반지하 가족, 둘의 대비를 볼 때가 더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극에 촘촘히 박혀있는 한국적인 요소들, 있을 법한 상황,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나사 빠진 인물들의 존재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평론가는 "기생충"을 보고 조던 필 감독을 떠올렸다고도 하는데, "겟 아웃"이나 "어스"는 신선했지만, 설정이나 이야기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상징적이어서 이입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생충"의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동시에 어딘가에 있을법한 플롯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정말 잘 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한 줄로 줄이자면, 설국열차의 한국적이고, 현실적이며, 완성도 높은 버전이 바로 영화 "기생충"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음 브런치에서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다음 브런치 원본 글 : https://brunch.co.kr/@tejava/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