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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영화

[스타 이즈 본] 음악, 사랑, 사람에 대한 이야기

*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의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는 뻔히 들여다보이는 듯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의 공연에 벌떼처럼 관객이 모여들고, 일상생활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를 견뎌야 하는 정도의 슈퍼스타인 잭슨 메인은, 단순히 술을 마시려 들어간 어느 바에서 이름 없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뿐인 아마추어 앨리의 무대를 듣고,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들게 된다. 그는 무대에 앨리를 세우고, 그녀의 자작곡을 들려주고, 사람들에게 그녀의 넘치는 재능을 보여준다. "스타 이즈 본"이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잭의 손에 이끌려 수많은 관객들이 있는 무대에 서게 된 앨리는, 모두의 사랑을 받고, 스타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둘은 뜨겁게 사랑하게 된다. 약간 의외였던 것은, 매력적인 목소리와 노래에 더해, 잘생긴 얼굴까지 가진 잭슨 메인이라는 캐릭터에게 여성 편력이라는 요소가 없었다는 점이다. 함께 간 친구는 "그리스 신화 같다."라고 평했다. 원전이 1937년 작품이기 때문일지도 - 이번 스타 이즈 본은 4번째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 모르겠다. 어쩌면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다른 인물 없이 서로만을 열렬히 사랑하는 모습 덕분에 이 영화를 더 사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잭과 앨리, 둘이 만나고, 타인이 낄 틈 없이 서로만을 바라보는 신화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잭이 앨리의 삶을 구원해 주고. 투명해서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호수처럼 예상 가능하던 전개를 보여주던 영화는, 중반 이후부터는 앨리의 성공과 잭의 몰락을 대치시키기 시작하며 분위기를 튼다. 앨리가 새로운 프로듀서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수반된 그녀의 파격적인 변신 - 마치 레이디 가가의 음악과 비슷한 팝 뮤직이라는 점은 아이러니 - 은 잭을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불만은 잭의 음주와 약물 복용, 혹은 앨리를 향한 직접적인 가시, 그러한 형태로 거듭 표출된다. 잭이 몰락하는 자신의 현실에 비해 승승장구하는 앨리의 모습을 보고 질투심을 느낀 것이라고 보기는 정황상 어렵다고 생각한다. 몰락하는 자신의 모습보다 잭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자신이 처음 드랙 바에서 찾아낸 앨리의 모습과 색깔이, 그녀가 메이저 씬에서 성공 해갈수록 사라져 버리는 현실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잭은 앨리를 스타가 되게 한 음악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앨리를 무대 위로 끌어올렸기 때문에, 앨리를 망쳐버렸다고까지 이야기한다. 둘의 상승과 하강의 대비는 그래미 시상식장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래미 신인상을 받는 앨리의 모습 직전에, 신예들에게 보컬 자리를 뺏기고 병풍처럼 서서 기타 반주나 할 뿐인 과거의 스타 잭슨 메인의 무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순간, 그는 술과 약에 취한 채 몰락의 정점을 찍고 만다.



 제목은 "A Star is Born"이고, 앨리라는 한 명의 스타가 탄생하지만,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스러져 가는 잭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의 청력은 사그라들어가고 있지만, 그는 공연을 직접 귀로 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청력 보정 장치를 착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가 원하는 진정한 음악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한 순간이라도 그가 원하는 음악을 하고 그것을 영영 하지 못하게 되는 길을 택한 셈이다. 잭이 추구하는 자신의 음악, 자신의 가치관을 담은 예술이 스스로의 삶에 얼마나 큰 비중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죽어가던 그에게 나타난 새로운 의미는 앨리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진솔한 목소리에, 자신의 생각을 담은 음악까지. 잭이 앨리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 이유는, 그녀의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앨리는 잭의 꼭두각시가 아니었고, 그녀가 원하는 음악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잭을 괴롭게 하는 어떤 이유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거기에 하강하는 그의 커리어까지. 그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던 형과의 사이마저 틀어지고, 그는 술과 약물에 다시 손을 대고 만다. 결국 그는 술과 약에 취해 앨리의 인생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되고, 그것은 그를 더욱 강하게 구석으로 밀어붙이고 말았다.



 스타 이즈 본이 좋았던 이유는 음악 영화 본연의 매력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수록곡 하나하나가 주옥같아서 집에 와서 몇 번이고 다시 듣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영화 중에 현실적이면서도 멋지게 담긴 공연 장면들이 또 떠올라서, 영화를 자꾸 곱씹게 했다. 곡들의 가사 하나하나도, 영화의 내용을 닮아 있거나, 잭과 앨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 담겨 있거나, 아니면 영화의 내용을 더욱 더 감격스럽게 만들거나 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좋은 곡들. 이것이 음악 영화의 본질이자 차별화된 강한 무기 아닐까. 그리고 스타 이즈 본은 그 점에서 기본이 탄탄한, 아주 매력적인 음악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스타 이즈 본이 좋았던 이유는 내가 봤던 뻔한 음악 영화의 플롯을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스, 비긴 어게인 같은, 뮤지션들에게는 판타지 같은 그런 영화들이 있다. 지금도 가끔은 찾아볼 정도로 그 영화들을 좋아하지만, 갈등이 없이 모두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볼 때면 이 영화의 장르가 음악인지 판타지인지 싶어서 몰입에 방해가 될 때가 있다. 무명인 뮤지션이 성공해가는 내용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영화들을 좋아할 뿐, 개연성은 많이 아쉽다고 생각한다. 스타 이즈 본의 색깔은 판타지 음악 영화들보다는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음악에 뚜렷한 가치관을 가졌지만, 저물어 가는 커리어에 밀려, 그리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성격이 맞물려 저물어간 잭의 이야기, 그리고 누구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목소리를 가졌기에 일약 스타가 된, 그리고 자신의 가수 인생을 끝장낼 뻔했던 잭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앨리의 이야기. 두 사람의 이야기는 충분히 극적이고 매력적이고, 개연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타 이즈 본은 매력적인 음악, 열정적이면서도 순정적인 두 사람의 사랑, 그리고 아티스트인 한 인간의 인생, 그런 매력적인 요소들로 가득 채워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음 브런치에서 "데자와"라는 필명으로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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