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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전자제품

아이폰을 더 좋은 카메라로. DxO ONE 사용기


1. DxO ONE을 사게 된 순간은 너무나도 충동적으로 찾아왔다. 블랙 프라이데이즈음 해서, 클리앙의 알뜰구매 게시판을 들어갔다가, $110이라는 가격표를 한 이 물건을 보게 된 것이 시초였다. 글을 읽어보니, 원래는 한 40만 원 하는 물건인데 싸게 판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지갑을 연 것은 글보다는 댓글들이었는데, "이제 DxO ONE을 샀으니 아이폰만 사면 되겠네요." 같은 댓글들이 나의 관심을 잡아끌었다. 아이폰에만 장착해서 쓸 수 있는 카메라구나, 근데 얼마나 괜찮길래 이걸 사고 아이폰을 사면 된다는 드립을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마침 아이폰 SE의 카메라에 아쉬움이 컸던 차이기도 한데, 블랙 프라이데이 딜의 특성상 시간을 끌면 물건이 매진될 것 같아, 그냥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주문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물건을 주문하게 된 셈이다.



2. 사진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아이폰 SE의 카메라에 꽤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아이폰 화면으로 보거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거나 하는 일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약인 그런 상황에서, 테크 커뮤니티를 하다 보니 자연히 아이폰 SE의 카메라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을 조금만 확대해도 보이는 픽셀들은 애써 못 본 척한다 치더라도, 밤에 찍히는 자글거리는 노이즈나 뭉개지는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버렸다. 카메라와 스크린 빼면 딱히 빠질 게 없는 아이폰 SE가 눈 밖에 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스크린이야 눈이 적응하면 될 문제지만, 카메라는 어쩔 수 없었다. 카메라만 더 좋으면 SE를 오래오래 쓸 텐데... 그런 생각을 종종 하던 차에 DxO ONE이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더 구매 버튼을 쉽게 눌렀던 것 같다. 원래 출고가대로라면 살 엄두가 나지 않았겠지만, 라이트닝 딜을 통해 10여만 원 정도의 돈을 들여서 아이폰 SE에서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아이폰 업그레이드 비용보다는 훨씬 싼 가격에, 지금처럼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스마트폰을 쓸 수 있다면?



3. 아마존에서 주문한 DxO ONE의 배송은 꽤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졌다. 처음 받아본 감상은 정말 작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가지고 다녀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것 같은 크기였다. 야외로 들고 나가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바로 스마트폰으로 옮겨 확인해보았다. 작은 아이폰 SE의 화면으로도 DxO ONE을 통해 엄청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밤에 찍은 사진인데도 사진상의 디테일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스마트폰 카메라에 비해 불편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를 쓰려 할때마다 스마트폰과 DxO ONE을 연결해야 했고, 연결 후 전용 어플이 자동으로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바로 켜질 때가 있고 끝내 켜지지 않아서 수동으로 어플을 켜야 할 때가 있었다. 계속 어플을 켠 채로 다니자니 스마트폰 배터리도 낭비고, 무엇보다 DxO ONE의 배터리가 너무나 작아서 켜고 다니면 몇 장 찍지도 못했는데 배터리가 바닥을 드러냈다. 별도로 젠더를 구매하지 않으면 결합 때마다 아이폰 케이스를 벗겨야 하는 것도 사소하지만 큰 문제였다. 정말 얇은 TPU 케이스를 쓰고 있는데도 연결이 안 되는 걸 보면, DxO ONE을 아이폰에 연결할 때는 그 어떤 얇은 케이스를 사용해도 안 되는 모양이었다. 사진을 찍다가 케이스를 씌우지 않은 스마트폰을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그런 점에서 사용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또한, 찍은 결과물을 이미지 프로세싱을 거쳐야 하는 점도 번거로웠다. JPG 포맷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카메라를 따로 들고 다니기까지 하는 수고를 들였으니 원본인 RAW 파일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RAW 파일의 경우는 아이폰에 자동 저장하는 기능 자체가 없어 어플에서 한 장 한 장 아이폰으로 넣어주어야 했고, 현상 역시 아이맥에서 구동되는 공짜 어플을 쓸 수 있지만 한 장 한 장 수정해줘야 했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한 대가로 상당한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첫인상을 짧게 요약하면, 정말 작고 가벼움에도 좋은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기지만, 사진을 찍는 과정, 그리고 이미지 프로세싱을 하는 과정이 번거롭다, 정도로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4.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 좋은 사진을 찍기는 충분하기에, DxO ONE을 구매함으로써 아이폰 SE의 수명 연장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게 되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기에는 전혀 부담되지 않는 무게와 부피였기 때문에 가방에 넣고 다니며, 좀 괜찮은 사진을 찍어야 하는 순간에 쓰거나, 여행이나 전시회 등을 갔을 때 적극적으로 써 보았다. 그렇게 한 달 반 정도를 사용하게 되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사용하면서 느낀 점은, DxO ONE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좋은 기기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DxO ONE은 잠금 해제조차 필요하지 않은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결코 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보통의 DSLR보다 이미지 프로세싱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애매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사진 수정에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니고, 그저 사용하고 있는 구형 아이폰의 카메라가 수준급이 되기를 바라는 사용자에게는 이만한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했듯 디테일을 잡아내는 능력은 스마트폰 카메라에 비할 바가 못 되고, 스마트폰 카메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하는 보케 효과는 물리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DSLR보다는 훨씬 부피가 작아서, 들고 나간 날 뭔가 사진을 찍어야만 할 것 같은 DSLR과는 다르게 항상 부담 없이 소지할 수 있다. DxO ONE을 아예 아이맥에 연결해 자동 이미지 프로세싱 기능을 사용, RAW를 현상해서 JPG로 저장해주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기능을 통해 통째로 사진을 추출하고 현상하고 있다. 아무리 같은 옵션으로 자동 현상을 했더라도, SNS나 메신저에서 쓰기에는 흠잡을 데 없으면서, 스마트폰 카메라보다는 훨씬 나은 사진을 얻을 수 있기에 자동 현상 옵션을 애용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사진은 원본 RAW 파일을 가지고 애정을 담아 수정해주면 된다. RAW에 일반 사진 포맷보다 담겨있는 정보량이 많아서 그런지, 수정 결과 더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앞으로 아이폰 SE를 쓰는 한, 그리고 신형 아이폰을 사더라도, DxO ONE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중요한 순간에 사진을 찍을 때 사용할 것 같다. 추가로 지출을 해서 DSLR을 구입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진을 얻을 수 있어서, 사진에 관심이 생기게 되면 더 써먹을 구석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2018년 최고의 지름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