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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음악

전투용 통기타 (Swing SM-100 OP) 영입기 - 1. 싼 기타만 쫓다가

왜 줄이 잘려있는지는 읽다보면 알게 된다


 보컬만 하던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200만원짜리 깁슨 레스폴을 갖고있는 친구가 스윙 R2를 한대 더 들이는지, 왜 셱터나 타일러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멕펜 텔레나 깁슨 멜로디메이커같은것을 탐내는지. 보컬이던 나는 '기타는 한 대면 다 해결되는 것 아닌가?'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과거의 그 친구들처럼 기타를 잘 치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비싼 기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타가 여러 대 있지만 새 기타를 탐내고 있고, 그 친구들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에피폰 ES-335 PRO와 스콰이어 텔레캐스터를 통해, 저가형 버전의 "좌펜더 우깁슨"을 실현했지만, 여전히 스트랫이 땡기거나 카지노가 탐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백수인 지금은 일렉기타를 당장 더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칠 시간이 많지도 않고, 돈을 벌고 있는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21세기니까, 실제 앰프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상 앰프를 쓰고 있어서, 이리저리 만지다 보면 어떤 음악이든 비슷하게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마침 기타도 한 대는 싱글 픽업에다가 텔레캐스터고, 한 대는 코일 탭 기능이 있어서 험버커와 싱글 픽업을 바꿔서 쓸 수 있어서, 조금 마음을 관대하게 가지면 못 낼 소리가 없기 때문에, 새 기타를 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노래를 들으면 찾아오는 통기타에 대한 유혹은 쉽게 떨치기 힘들었다. 어쿠스틱 앰프, 어쿠스틱 이펙터를 사용해도 통기타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세미할로인 ES-335 PRO를 앰프 없이 치면서 달래곤 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고 아쉬웠다. 그리고 그 아쉬움이 커져서 통기타를 사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왜 한 대면 충분할 것 같은 기타를 여러 대 사는지 이해할 수 없던 나는, 몇 년 후에 세 번째 기타를 알아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정말 가끔 칠 기타를 찾는 거라서, 그렇게 큰 돈은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몇 가지 조건을 걸었다. 10만원 이하일 것, 그래도 이름을 들으면 알 수는 있는 브랜드일 것. 마음 속에 둔 것은 에피폰, 야마하, 데임, 덱스터, 스윙 정도였다. 컷어웨이일 것. 일렉기타로 하이프랫을 치는 곡을 몇 개 연습중이라, 통기타로도 쳐보고 싶었기 때문에 건 조건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장터에 잠복했다. 10만원 아래인 멀쩡한 기타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 중고로 팔려고 올리는 물건의 사진을 찍는데 먼지조차 털지 않는지, 그냥 베란다에 늘어뜨려 놓고 사진을 찍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격이 괜찮으면 조건 하나씩이 엇나갔다. 브랜드가 이상하거나, 컷어웨이가 아니거나.

이해를 돕기 위한 컷어웨이와 깁슨 다이아몬드 로고

 그렇게 짧지 않은 중고장터 잠복 끝에 이 기타를 사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홍대입구역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 한 잔을 하며 중고장터를 뒤지는데, 스윙 통기타가 장터에 한 대 올라와있었다. 눌러보니 컷어웨이가 아니었지만, 끌렸던 이유는 중고거래 장소가 홍대 근처였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6만원이었기 때문이다. 스윙 헤드 모양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로고도 멀리서 보면 약간 깁슨 다이아몬드 로고랑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컷어웨이가 아니지만, 가격이 너무 좋아서, 그냥 사도 될 것 같았다. 더 오래 기다리면 딱 원하는 물건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냥 막 굴릴 기타를 사려고 장터를 계속 들여다보는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녁 약속 한시간 전 쯤 거래 약속을 잡았다. 판매자는 나를 보고 약간 당황하는 듯 했다. 잠시 후 판매자는 기타 가방에서 '최신 가요로 배우는 통기타 입문' 같은 책을 꺼냈다. "이거 가져오긴 했는데 별 필요는 없으시려나요." 판매자가 어색하게 말을 건넸다. 너무 싼 기타라서, 막 기타를 입문하려는 사람이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근데 나도 딱히 기타를 잘 치는 편은 아닌데, 외모가 그래 보였나. 이런 기타를 왜 사시냐는 질문에는 그냥 막 쓸 통기타가 하나 필요해서 사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구매 전에 확인하기 위해, 기타 가방의 지퍼를 내려 통기타를 꺼냈다. 넥은 휘어있지 않았고, 상판이 따로 부풀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넥을 쥐고 위아래로 쓸어내려 보았는데, 과장 좀 더해서 프랫에 손이 베일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안 산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가격이 워낙 저렴하니까, 어떻게 하면 되겠지 하고는 사고 말았다. 돈을 건네고 약속 장소 근처 카페에 앉아 기타를 꺼내 보았다. 넥과 프랫보드가 마른 장작이었다. 불을 붙이면 정말 잘 탈 것 같은 상태였다. 나무인 부분은 말라서 줄어들고, 금속인 프랫은 크기가 줄어들지 않아서 혼자 튀어나오게 되고, 그 부분이 손가락을 긁는 것 같았다. 대체 기타를 어떻게 내놓으면 이 지경이 된 것인지 의문일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할 건 없지만, 그냥 안 산다고 하고 다른 기타를 봤어도 괜찮았겠다 싶다.


-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