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글/음악

언제나 나의 세컨 기타로 남을 텔레캐스터

2. Squier Standard Telecaster



 나의 스콰이어 스탠다드 텔레캐스터는, 거의 대부분 집구석에 박혀있었다. 항상 메인으로 쓰는 다른 기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피폰 카지노, 리틀 마틴, EJ-200CE 등, 항상 주로 가지고 노는 기타는 따로 있었고, 텔레캐스터는 항상 내 방의 서열 2위 기타였다. 그런데 서열 2위라는 것은 어쩌면 빛 좋은 개살구일지도 모른다. 내 삶에 기타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에 30분 꾸준히 연습하는 정도도 못 되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째 기타에 손이 가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두 번째 기타라는 타이틀은, 결국 항상 쓰지 않고 방 한 구석에 세워둔 기타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묵묵히 방치되어있던 텔레캐스터에게 메인 기타로 올라서는 순간이 찾아왔다. 졸업 논문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마음을 다잡으려고 가진 기타를 모조리 팔아버린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친구에게 받은 기타를 처분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고, 기타 한 대 쯤은 남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더해져, 방에는 스콰이어 텔레캐스터만이 남게 되었다. 기타가 한 대 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 자연히 텔레캐스터를 치게 되었다. 그전까지 메인으로 쓰던 거대한 통기타인 EJ-200CE에 비해, 텔레캐스터의 바디는 품에 쏙 안기고, 넥은 손으로 감고도 남았다. 뜻밖의 편한 연주감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일부러 큰 기타를 사서 한계를 넘어보려고 했는데, 텔레캐스터를 다시 치면서, '편한 기타가 좋긴 하구나.' 생각했다. 들여올 때 비용을 거의 지불하지 않아서일까, 거의 관심을 준 적이 없었는데, 이 시기에 손에 많이 쥐게 되면서 이 기타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알게 되었다.

 앞에서 말했듯, 이 기타를 들이는 데는 비용을 거의 지불하지 않았다. 단돈 5만 원이 전부이다. 친구가 쓰지 않는 기타를, 10만 원에서 기타 줄 값, 그리고 세팅비 정도를 빼고 나무 값 정도를 지불한 격이다. 오죽하면 기타를 사서 세팅을 받으러 가는데, 기타 샵 아저씨가 5만 원이면 본인이 사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굳이 텔레캐스터를 들인 것은 어느 정도는 사소한 물욕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위 텔레병이라는 것을 잠재우기 위함이기도 했다. 갖고 있는 기타 외에 다른 기타는 어떨지 궁금하고, 쳐보고 싶고, 갖고 싶어 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건 당연하니까. 그래서 레스폴이 궁금하고, 스트랫이 궁금하고, 할로 바디가 궁금하고, 그런 것이다. 그런데 유독 텔레병이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본 것 같다. 텔레캐스터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흔히 보이니까, 결국 그런 단어까지 만들어졌을 것이다. 왜 유독 텔레캐스터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이 보이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가늘고 길게 뻗은 넥, 작으면서도 특징적인 드러나는 바디, 그리고 그 위에 자리 잡은 예쁜 모양에 독특한 소리를 한 싱글 픽업들과 개성 있는 픽가드. 범용성 있는 스트라토캐스터의 소리와는 다르게, 와일드한 텔레캐스터의 소리. 그런 속성들이, 다른 기타들에 비해 충분히 매력적이고, 소위 "아이코닉"한 면모가 있다고 생각하다. 내게도 종종 찾아오던 악명 높은 텔레병을 봉쇄할 명목으로 스콰이어의 텔레캐스터를 들였다. 5만 원 정도는 치킨 몇 마리를 덜 먹으면 되는 돈이니까. 큰돈이 빠져나갈 수 있는 어느 구멍을 값싸게 틀어막은 셈이다. 하지만 사용해보면서, 스콰이어 스탠다드 텔레캐스터는 가격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좋은 기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연히 펜더 텔레캐스터에 비하면 텔레스러움이 부족하다. 덜 편협하고, 덜 자글거리는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너무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내 그런 의견을 듣고는, "그럴 거면 왜 텔레캐스터를 써?"라고 묻는 친구도 한 명 있긴 했다. 그래도 다른 기타들에 비해선 텔레스러워서 충분히 텔레병을 잠재울 수 있으면서, 조작하기 너무 버거운 개성을 갖고 있지 않아서 좋았다. 비록 애쉬가 아닌 로즈우드지만, 텔레캐스터 특유의 가느다란 넥을 하고 있었고, 덜 자글거리지만, 다른 기타들에 비해선 충분히 깽깽거리는 소리를 내주었다. 그래서 끝내 이 기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애정을 쌓아가던 와중, 마침 갖고 싶던, 매물이 별로 없던 기타가 괜찮은 가격으로 나오게 되었고 결국 구입까지 하게 되었다. 험버커 픽업을 달고 있는 할로 바디 기타, 앞의 두 글을 쓰게 만든 에피폰의 ES-335 PRO를 사게 되었다. 돌고 돌아 다시 에피폰의 할로 바디 기타로. 텔레캐스터는 다시 방구석의 넘버 2 신세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새로 산 기타를 많이 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넘버 2 기타인 스콰이어 스탠다드 텔레캐스터를 기타 가방에 집어넣지 않을 것이다. 대신, 기타 세 대를 세울 수 있는 스탠드를 사서 같이 세워두고, 그 날 내키는 기타를 칠 계획이다. 새로 산 기타는 새로 산 기타대로 손이 갈 것이고, 텔레캐스터는 한참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이 갈 것이다. 삶에 음악의 비중을 늘리고, 더 다양한 사운드를 실험해보고 싶다. 단돈 5만 원에 들여온 텔레캐스터는, 결국엔 꽤 의미 있는 기타가 되었다.


다음 브런치에서 "데자와"라는 필명으로 연재 중입니다.


원본 글 : https://brunch.co.kr/@tejava/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