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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음악

애매하게 비싼 기타 러버 락,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값싸게 주문해본 후기

공연 중 기타가 추락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장치

 기타를 취미로 하는 사람에게 어쩌면 공연의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공연날 무대 위에서 한껏 밴드의 템포에 취해 연주를 하다가 솔로 파트가 다가올 때, 흥분이 극에 달하고, 기타에 힘을 주어 쥐고 강하게 솔로 피킹을 시작한 순간, 갑자기 스트랩이 훌렁 빠져서 기타가 바닥에 쿵 하고 떨어진다면? 그래서 크고 작은 덴트가 생긴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순간이지만, 종종 있는 일이다. 폴리에스테르든 천이든 가죽이든, 스트랩은 기타의 스트랩 핀에 걸쳐져있는 형태이고, 그래서 오래 쓰면 헐거워지고, 특정 방향으로 힘을 주면 쑥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럴 때마다 스트랩을 바꾸자니 나름 기타와 깔맞춤이 되어 정이 들었기도 하고, 쓸만한 스트랩들의 가격은 묘하게 심리적 저항선쯤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걸 굳이 이 돈 주고 사야하나? 안 빠지겠지...' 생각하게 만든다. 스트랩이 기타에서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가 몇 가지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스트랩 락이다. 기타의 일반적인 스트랩 핀 대신에, 아귀가 맞물려서 풀리지 않는 장치인 스트랩 락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물론 기존의 스트랩 핀을 제거해야 하고, 새로운 스트랩 락을 돌려 넣어야 하는데, 기존의 나사를 빼고 새로운 나사를 넣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에 영 찜찜하다. 작업을 하다 잘못되면 기타가 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스트랩 락의 가격 자체도 4~5만원대라서, 값싼 기타를 쓰고 있다면 배보다 배꼽이 큰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해결책이 위 사진과 같은 러버 락(Rubber Lock) 이다. 보통의 직물보다는 견고하고 잘 변형되지 않는 고무 재질로 만든 고리를 스트랩 핀에 끼워서, 스트랩이 빠지는 것을 막는 장치다.


심리적 저항선은 과학이다...

 문제는, 막말로 그냥 고무 고리인 주제에 애매하게 비싸다는 것이다. 택배비까지 하면 만원정도 되는 가격을 자랑한다. 매장에 가서 사면 배송비를 빼고 살 수 있겠지만, 겨우 저걸 사러 매장까지 가기도 애매하다. 결국 '안 빠지겠지...'로 다시 수렴하고 만다. 그렇게 기타를 떨어뜨리고, 엉덩이에 큰 덴트가 생긴 기타를 갖고 마는 것이다. 어떡하면 저렴하게 러버 락을 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DIY하는 방법도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었는데, 영 땡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머릿속에 한 사이트가 떠올랐다. 완제품은 절대 사면 안되지만, 스마트폰 케이스, 배터리, 키링 정도는 아주 값싸게 구할 수 있는 그 사이트. 알리익스프레스 말이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악기 관련 파츠를 검색해보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검색해보니 오만 파츠들이 다 있었다. 픽가드, 트러스로드 커버, 스트랩 같은 나중에는 살 법한 물건들부터, 스트링, 헤드머신, 픽업(!!)같은 절대 알리에서는 사면 안 될 것 같은 파츠들까지. 한눈팔이를 멈추고, 원래 사고자 했던 러버 락을 검색했다.


국내에선 한 쌍에 만원짜리가 알리에선 다섯 쌍에 2000원이었다.

 검색해보니 이런저런 제품이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국내와 비교해서 엄청나게 쌌다. 그나마 비싼게 한 쌍에 700원정도였다. 굳이 여러가지 색깔을 주문할 게 아니면, 그냥 묶음으로 사는 것이 저렴한 듯 했다. 여러개를 사서 친구도 나눠주고 하려고 1.82달러짜리 5쌍을 구매했다. 기껏해야 고무 재질 고리인데, 이 가격이면 괜찮겠지, 기타에 들어가지도 않는 불량품이 오면 어쩌나, 이런 저런 고민은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2천원은 없어도 그만인 돈이라 실험삼아 주문했다.


그리고 도착한 제품은... 매우 양호했다.

 과거 광군절 기간에 아이폰 케이스를 주문한 적이 있는데 배송 도착까지 두 달 정도가 걸렸다. 이번에 새로 주문을 하면서, 그 정도 기다릴 각오를 하며, 아예 잊어버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문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집 앞 우편함에 소리소문없이 뽁뽁이 봉투가 들어있었다. 열어보니 러버 락이었다. 과연 어떤 물건이 들어있을지, 살짝 긴장하며 포장을 뜯었다. 제품은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마감이 깔끔하지는 않지만, 견고하고 동그란 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어차피 스트랩 핀에 끼우는 순간 거들떠보지도 않을 고무 링인데, 마감이 깔끔하지 않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스트랩 핀에 잘 고정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문득 스트랩 핀의 구멍이 너무 작아보였다. '스트랩 핀에 안 들어가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힘을 별로 주지 않았는데, 러버 락이 스트랩 핀에 쏙 들어갔다.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듯, 알리에서 구매한 러버 락은 스트랩 핀에 견고하게 붙어서, 기타가 갑작스럽게 낙하하는 사태를 막아 주기에 충분했다.

 역시 이런 소모품 같은 류는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시키는 것이 제일이구나, 생각했다. 물론 사용하는 과정동안 내구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가격이 너무 싸서 망가질 것 같으면 10개들이를 새로 또 주문하면 될 것 같다. 다음엔 기회가 된다면 픽가드나 스트랩, 아니면 트러스로드 커버 정도를 시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