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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ETC

컴퓨터 활용능력 1급 필기시험 후기

0. 취업 준비에 필수로 여겨지는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이지만, 쉽사리 시작하지 못했던 이유는 주변의 친구가 컴활 시험 준비와 학기를 병행하며 고통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준비할 것이 많기도 하고, 한 번에 붙지 않으면 여러 번 시험 볼 각오를 해야 하는 것 같아서 학기 중에 일부러 무리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빨리 따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다. 학기가 끝나면 바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기가 끝나고, 바로 시험 준비를 해야 했지만, 종강도 만끽하고, 다른 할 일도 있었고, 신정에는 집에도 다녀오고, 그러다 보니 원래 계획보다 자꾸만 늦어지게 되었다. 마음이 급해진 상태로, 컴활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1. 먼저 본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실기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반복 숙달을 하는 것이 답이고, 필기는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되기 때문에 기출 문제를 많이 풀다 보면 자연히 붙게 된다는 것으로 조언들이 모였다. 조언대로 하기 위해 기출문제 모음, 그리고 시험 내용 요약본을 받았다. 기출문제는 컴퓨터 일반, 스프레드시트 일반, 데이터베이스 일반, 총 3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첫 번째, 각각 총점 100점인 세 과목의 평균이 60점을 넘을 것. 다르게 말하면 세 과목 점수의 총합이 180점을 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두 번째, 각각의 과목이 40점 미만은 넘어야 한다는 것. 한 과목이라도 40점 미만이라면, 평균 60점을 달성하더라도 과락이 된다. 60/60/60이면 가장 이상적인 점수지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100/40/40이어도 통과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컴퓨터 일반 과목은 컴퓨터에 대한 자질구레한 사항들을 묻는다. 문제는 너무 자질구레하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잡은 지 근 20년이 되어가는데도 공부를 해야지만 풀 수 있다는 것은, 이걸 몰라도 컴퓨터를 다루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뜻도 된다. USB 2.0의 최대 전송 속도 같은 건 컴퓨터를 다루는데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 암기 시험인 셈이다. 스프레드시트 일반은 엑셀에 관해 묻는다. 이 영역 역시 컴퓨터 일반만큼이나 자질구레한 지식을 묻는다. 단축키나 함수에 대한 것을 묻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화면 자료도 주어지지 않는데 어느 설정 창에서 어떤 기능이 가능한지, 이런 것을 암기했는지 확인하는 문제들은 아무 쓸모 없는 것 같다. 그런 쓸모 없는 것들을 묻는 문제들이 많이 나온다. 데이터베이스 일반은 액세스에 대한 내용을 묻는다. 액세스는 생전 다뤄본 적이 없어서, 이 영역에서는 과락만 면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공부했다. 하지만 나중에 첨부할 시험 점수에서도 알 수 있듯, 데이터베이스 일반 영역의 문제들이 스프레드시트 일반의 문제들보다 쉬웠다. 주로 나오는 패턴이나 키워드가 정해져 있었고, 문제에 대한 답이 다른 영역에 비해 직관적이기도 했다. 지문을 잘 읽고 답인 것 같은 선택지를 찍으면, 그게 답인 경우가 꽤 많았다. 문제를 풀고 기출 문제를 다시 훑어보는데 일주일 정도를 투자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것은 기출 문제를 푸는 과정이었다. 맨 처음 기출 문제지를 막무가내로 풀려고 들여다보았을 때 든 생각은,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읽히지 않으니 집중할 수 없어서, 문제를 풀다가 자꾸 딴짓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이 시간을 제일 많이 잡아먹었고, 채점 후 오답의 내용을 숙지하고, 한 바퀴 돌고 나서는 정답의 내용도 체크하고, 이 과정은 일주일 중 이틀 정도만 투자했다.


2. 시험장은 시청역의 대한상공회의소 건물을 선택했다. 건물 5분 거리에 카페들이 워낙 많아서 대기할 장소 걱정은 없었다. 미리 가서 필기해둔 기출문제를 눈으로 훑어봤다. 상공회의소 지하 1층에 시험장이 있고, 그 앞에는 대기할 수 있는 의자들이 많이 있어서 30분 전쯤 가면 앉아서 대기할 수도 있다. 앞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시험 시작 10분 전에 시험장 불을 켜주며 진행요원들이 입장 안내를 해줬다. 로비의 스크린에 이름과 좌석번호를 띄워주는데, 그걸 보고 맞는 자리에 가서 앉으면 된다. 10분간 시험용 컴퓨터 조작 방법에 대한 설명이 이뤄진다. 필기시험이라서 당연히 종이에 풀 줄 알았는데, 컴퓨터를 써서 의외였다. 시험 설명이 끝이 나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 시간은 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런데, 문제들이 너무 낯설었다. 망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끝까지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모르는 문제는 넘기며 60번 문제까지 풀어보았다. 12문제 정도 풀지 못했고, 다 푸는데 20분 정도 걸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1번부터 천천히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꼼꼼히 읽다 보니, 답을 바꿔야 할 것 같은 문제들이 컴퓨터 일반 영역에서 다수 보였다. 그렇게 몇 개 고치다 보니, 문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출 문제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지문의 내용이 기출 문제에서 본 것들이었다. 못 푼 문제도 다 풀고, 풀었던 문제도 다시 읽고, 그렇게 하니 40분 정도 지나있었다. 그대로 시험 종료 버튼을 누르고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시험지를 더 째려보고 있어도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스프레드시트 일반 영역이 제일 풀기 까다로웠다. 데이터베이스 일반 영역은 기출문제에서 봤던 단어, 기능, 유형들이 많이 나와서 별로 고민하지 않고 답을 골랐다. 컴퓨터 일반은 의식의 흐름으로 풀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많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만약 합격한다면, 스프레드시트 일반은 과락을 면하는 정도로 나오고, 컴퓨터 일반과 데이터베이스 일반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3. 컴퓨터 활용능력 필기시험 결과는 시험을 친 다음 날 오전 10시에 나온다. 예전에는 시험을 본 날 자정에 필기시험을 신청해서 합격 내역이 있다는 팝업이 나오는 것을 확인해서 합격 내역을 미리 확인하는 방법이 있었다는데, 요새는 막혔는지 되지 않았다. 10시가 가까워질수록 초조해서, 혹시 먼저 결과가 발표되지는 않는지 상공회의소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그런데 오전 9시 35분쯤에, 필기시험을 신청해보니 합격 내역이 있다는 팝업창이 떴다.



 자정에 합격 내역을 확인할 때 썼던 그 방법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닌데, 발표 30분 전 쯤에나 가능한 것 같다. 그래도 단순히 버그일 수 있어서, 너무 설레발을 떨지 않으며 결과를 기다렸다.


10시가 되자 결과가 올라왔다. 합격이었다. 예상에 가깝게 스프레드시트 일반이 제일 낮은 점수가 나왔다. 처음에는 과락만 면할 생각이었던 데이터베이스 일반은 오히려 합격권인 60점을 넘는 점수를 받았다. 다시 돌아가서 푼 문제들이 많이 맞아줘서인지, 컴퓨터 일반에서도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왔다. 스프레드시트 일반은 예상대로 가장 낮은 점수가 나왔다. 어찌 되었든 목표로 했던 한 번에 합격하기에 성공했다.


4. 합격하고 나서 느낀 점은, 처음 시험지를 받아들었을 때는 막막하고, 하기 싫은 감정이 자꾸 솟아나는데, 그 감정들이야말로 필기시험을 준비하는데 가장 큰 독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기존에 나왔던 기출 문제들을 재활용하는 문제은행 방식이기 때문에, 이론을 공부하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면서 문제도 눈으로 익히고, 시험 내용도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방식이 단기간에 합격하기에는 최적의 방식인 것 같다. 필기 시험을 보기 전에 실기 강의를 들으면서,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뒤 필기 시험을 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 틀린 방법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을 다룬다고 해서 다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실기 강의를 들으며 필기를 준비하는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 컴퓨터를 20년 남짓 다뤘지만 컴퓨터 일반 영역의 공부를 해야 했듯이, 엑셀을 잘 한다고 해서 스프레드시트 일반 영역의 문제를 잘 풀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엑세스를 모른다고 해서 데이터베이스 일반 영역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다. 요약본을 먼저 정독하고 나서 시험 문제를 풀라는 의견들도 있는데, 반은 동의하고 반은 반대다. 80장이 넘는 분량은 한 번 훑어보기에도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정말 가볍게 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정도는 괜찮은데, 개인적으로는 읽히지 않으면 붙잡고 있기 힘든 성격이라서 몇 번이고 딴짓을 하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것 같다. 차라리 0점을 맞더라도 기출 문제를 풀고, 틀린 문제와 잘 모르겠는 내용을 표시하고, 그다음에 오답을 표시하며 요약본을 보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관건은 빨리 기출 문제들을 풀고 자꾸 눈으로 보면서 익히는 것이다. 그걸 끈기 있게 해낸다면 과장을 보태서 가장 이른 날짜인 4일 뒤 시험을 지원하고, 4일간 공부해서도 붙을 수 있는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활용능력 1급 필기의 가장 큰 적은 의심, 그리고 집중력 부족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붙을 수 있을까?' 생각할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풀고, 딴짓하고 싶어도 조금만 참고 한 회차라도 더 풀고, 한 문제라도 더 오답 정리를 밀도 있게 하고, 그렇게 하면, 정말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시험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