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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음악

아이패드 프로 10.5에서 개러지밴드 써보기 - iOS용 개러지밴드 첫인상

1.

 처음 DAW에 입문한 것은 불법으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큐베이스였다. 큐베이스에 포커스라이트사의 스칼렛 2i2, mxl 2006 콘덴서마이크까지. 마냥 신기하긴 했는데, 인터페이스가 유저 친화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뭘 몰랐기 때문일수도 있고, 불법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큐베이스의 버전이 구버전이라서 인터페이스가 좋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큐베이스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그런 것일수도 있고...


 원래 노트북으로 사용하던 서피스 프로 4를 처분하고 맥북 프로를 구입하게 되었다. 계기는 여러가지였는데, 그 계기들은 생산성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엮일 수 있었다. 애플의 mac OS와 iOS 하에서만 구동되는 영상, 음악 작업 등을 효율적으로 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궁금했고, 그런 프로그램들을 사용함으로써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의 퀄리티가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맥북 프로를 구매하고, 파이널컷 프로, 그리고 로직 프로 X를 사용해보았다. 나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았다. 윈도우를 쓸 때, 영상 작업 프로그램은 프리미어, 베가스를 써 보았고, DAW는 아까 말했던 큐베이스를 써 보았다. 그리고 mac OS의 파이널컷 프로, 그리고 로직 프로 X는 윈도우의 그것들보다 훨씬 조작이 편했다.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 훨씬 좋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머릿속에 있는것을 프로그램 상으로 옮기기에 윈도우의 프로그램들보다 상대적으로 아주 편했다. 조금 비약해서 설명하자면, 윈도우의 프로그램들에서 어떤 기능을 쓰려고 하면 설명서나 공략을 보는것이 필요했다. 그 기능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힘들었다. 맥 OS상의 프로그램들은 그런 설명을 찾아볼 일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상에서, 이렇게 하면 되려나? 하는 생각으로 조작을 해 보면 실제로 그 기능이 실행이 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기술의 발전은 내 머릿속에 있는 걸 더 쉽게 화면 상으로 끄집어내는것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편의성, 그리고 예쁜 인터페이스, 그런 것 때문에 나는 만만치 않은 가격의 애플 제품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폰 SE를 구매했고, 추가로 아이패드 프로 10.5까지 구매하게 되었다. 명성이 자자한 애플 제품들 간의 연동을 바탕으로 한 시너지에 큰 기대를 하면서. 확실히 Airdrop과 Handoff, 그리고 iCloud 연동 기능이 가져다 주는 편의성은 엄청났다.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과 영상을 아이패드와 맥북으로 몇 초 만에 뿌릴 수 있었고, 아이폰으로 받은 문자를 작업 중인 맥북을 통해 답장을 보낼 수 있었으며, 맥북에서 쓰던 글을 아이폰으로 이어서 볼 수도 있었다. 맥북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잠시 산책을 나왔을 때, 맥북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페이지를 주머니 속의 아이폰으로 이어서 볼 수도 있었다. 연동 기능 덕분에 세 기기의 각각의 생산성이 극대화되는 현상. 다만 모든 것의 종착역은 맥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졌고, 가장 할 수 있는것이 많으니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는 간단한 스케치용, 그리고 완성된 작업물을 체크하는 정도의 포지션이라고 생각했다. iOS용 개러지밴드의 진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2.

 왜 개러지밴드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맥용 개러지밴드 때문이 큰 것 같다. 맥북 상에서 사용해본 개러지밴드는 로직 프로 X의 라이트 버전 수준이었다. 애플이 로직 프로 X의 판권을 사버리는 과정에서, 개러지밴드의 인터페이스와 로직의 인터페이스를 흡사하게 만드는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 것일까. 개러지밴드는 무료로 제공되는 어플이고 로직 프로 X는 구매해서 사용해야 하는 어플이라서 그런지, 로직 프로 X에는 개러지밴드에 없는 기능, 없는 가상악기들, 그리고 없는 애드온 등이 많았다. 그래서 iOS용 개러지밴드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굳이 길 가다가 기가 막힌 멜로디가 생각나면 키보드를 꺼내서 녹음하고, 진짜 조용한 빈 방에서 마이크를 꺼내기 귀찮으면 내장 마이크로 목소리를 녹음하고, 그걸 맥북으로 옮겨서 작업할 수 있는 정도의 의의만 있는 줄 알았다.


3.

 하지만 iOS용 개러지밴드는 맥용 개러지밴드와 꽤 달랐다. 없는 기능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능들은, 오히려 나같은 악기 초심자들에게 굉장히 유용한 기능들이었다. 로직 프로 X 역시 충분히 좋은 프로그램이고, 내가 상상한 것을 결과물로 만들어내는데 편리한 여러 가지 기능들을 갖추고 있었지만, iOS용 개러지밴드도 그런 초심자를 위한 핵심적인 기능들은 다 가지고 있으면서, 맥북 버전에는 없는 기능 역시 가지고 있었다.




 가장 편한 기능은 코드를 입력하면 그에 맞는 화음을 즉석으로 연주해주는 기능이다. 건반악기 화면에서 우측 중앙에 있는 눈금이 그려진 막대같은 버튼을 클릭하면, 화면을 메우고 있던 건반들 대신에 다음과 같이 코드가 그려진 바가 8개 생긴다. 위의 네 개의 흰색 눈금을 누르면 그 코드에 맞는 화음이 눌러진다. 밑의 옅은 회색의 버튼들은 그 코드에 맞는 근음 하나씩을 연주해준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음이 낮아진다. 위의 흰색 눈금들은 높아질수록 높은 옥타브의 화음을 연주해준다. 이것들을 조합함으로서, 마치 자작곡을 스케치하거나 간단하게 코드 진행만 가지고 노래를 커버할 때 흔히 하는, 키보드 앞에 앉아서 "다음 코드가 뭐지?" 따위의 질문을 던지며 했던, 코드 진행을 통한 스케치가 가능하다. 이렇게 코드 진행을 통해 뼈대를 잡고, 다른 건반 트랙을 생성하여 디테일을 더해주면, 스케치나 데모 음원 수준에서는 훌륭한 연주를 클릭 몇 번으로 몇 분만에 완성이 가능하다. 나 같은, 머리에 있는 것을 옮기고 싶은데 건반 코드를 빠르게 전환하지 못해서 낑낑대는 사람들에게 이 기능은 정말 혁신적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코드를 원하는 타이밍에 짚기만 해도 바로 코드가 깔리니까. 아마추어 밴드 수준의 건반을 데리고 같이 합을 맞추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로직 프로에서 편하게 썼던 드러머 - 각각의 컨셉을 가진 드러머를 고르고, 복잡함, 볼륨, 스윙, 비트를 구성할 장비 등을 설정해주면 드럼 트랙을 즉시 생성해주는 기능 - , 퀀타이즈 등도 이 10.5인치라는 작은 기기 안의 프로그램에서 모조리 지원한다. 스케치 음원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능은 다 있는 셈이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만든 스케치 음원을 맥북 상으로 옮기는 것도 Airdrop을 통한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하다. 찍혀진 노트들과 녹음한 목소리로 구성된 프로젝트 파일을 맥북 프로 상에서 조금 더 수준 높은 악기로 바꾸거나, 더 좋은 컴프레서를 적용하거나 해서 완성시키면, 괜찮은 데모 음원이 완성된다.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말이다. 그렇게 Honne의 Good Together를 첫 습작삼아 정말 간소하게 커버해 보았다.



 아이패드 프로 10.5, 맥북 프로, 그리고 아포지 마이크 - iOS및 macOS 기기에 오디오 인터페이스 없이 다이렉트로 꽂을 수 있는 미니 콘덴서마이크 - 를 가지고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큰 건반도, 오디오인터페이스도 쓰지 않았다. 대신 애플의 제품 자체가 고가지만, 뭐랄까, 그런 장비들을 가지고 윈도우 프로그램 상에서 했던 것보다는 훨씬 직관적으로, 그리고 훨씬 편리하게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다음 습작은 또 다른 친구의 신청곡인 "Something Just Like This"로 할 예정이다. 친구가 작업 과정을 궁금해해서, 아이패드 프로의 화면 녹화 기능을 통해 앞의 8마디를 간단히 스케치하는 과정을 녹화해 보았다. 실수로 다른 메뉴를 들어간 과정까지 더해서 8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간단한 스케치를 하는데 적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비된다는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녹화한 영상이다. 조금 더 많이 사용해보고 제대로 된 후기를 작성하겠지만, 일단 지금까지의 결과물만 봤을 때, iOS용 개러지밴드는 나같은 초심자에게는 더 기능이 많은 맥용 로직 프로 X보다도 더 좋을 수 있는 어플이라는 생각이 든다.